[일기] JLPT N1 3개월 단기 합격의 환상, 그리고 내가 마주한 '불편한 진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글들이 있다. "노베이스 3개월 만에 JLPT N1 합격!", "6개월 만에 일본어 마스터하기"와 같은,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단숨에 고수가 되는 듯한 달콤한 성공담들 말이다.

당시 일본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던 나에게 그런 글들은 단순한 수기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복음과도 같았다. 그들의 성공 신화에 매료된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 저 사람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야? 죽기 살기로 매달리면 3개월, 길어야 6개월이면 충분해.'
나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의 심장으로 비장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잠을 줄이고, 자투리 시간을 모두 쏟아부으며 호기롭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내가 목표했던 기간 내에 N1의 벽은 너무나 높고 견고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내 머리가 나쁜 걸까?
좌절감에 빠져 다시 그 '성공 수기'를 꼼꼼히 뜯어보던 나는, 처음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니 애써 무시했던 치명적인 '각주'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참고로 저는 한국 어문회 한자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건 명백한 '함정'이었다.
한국 어문회 한자 2급이라니. 그 정도면 상용한자 2천 자 이상을 이미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안다는 뜻이다. 일본어, 특히 N1 수준의 고급 일본어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미 그 방대한 한자 데이터베이스를 머릿속에 탑재한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게임이었다.
이미 쓸만한 한자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3개월 만에 해냈다"고 말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초심자들에게는 거의 기만에 가까운 '사기'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은 이미 90% 완성된 퍼즐의 마지막 몇 조각만 맞춘 셈이었으니까. ㅠㅠ
뒤늦게 그 진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의 무모했던 도전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지금에 와서야 한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맨 처음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단어장을 펼쳤을 때는 외계어 같던 글자들이, 이제 어느 정도 한자를 익히고 나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자를 알면 알수록 새로운 단어를 외우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뜻을 유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처음에 무식하게 덤비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3개월 단기 합격'이라는 달콤한 광고판에 속았다. ㅠㅠ 하지만 그 쓰라린 실패 덕분에 일본어 학습의 본질이 '한자'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혹시 지금도 "노베이스 단기 합격"의 환상을 쫓는 누군가가 있다면, 부디 그 성공담 뒤에 숨겨진 '진짜 베이스'를 먼저 확인하길 바란다. 이건 나의 피눈물 나는 일기이자, 미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작은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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